초하루법문(2)

 

수행자의 바른 믿음과 실천에 대하여서 한마디 하겠습니다.

내가 믿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부처님을 믿는가? 아니면 다른 어떠한 힘에 의지하여서 유일신을 믿는가?

아니면 진정한 진리를 믿는가?

무엇이든 좋습니다.

왜? 그것을 믿는가? 우리는 모든게 불확실하고 불안하기 때문에 마음의 의지처를 찾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 대한 모든 것이 자신의 마음대로 될 듯하나 어느것 하나 내 마음대로 되지를 않습니다. 그 두려움이란 알지도 못하는 무지가 바로 자신의 믿음의 척도입니다. 생각지도 않은 불행과 생각지도 않은 일들이 수없이 우리를 기다립니다. 미혹하다보니 온통 고통이고 불안하고 불규칙한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대하여 잘 알지를 못합니다. 자신은 다 알것 같으나 전혀 알지를 못하고 다람쥐가 쳇바퀴를 돌듯 어둠 속에서 방황하고 깊은 우물 속에서 허덕이며 올라오지를 못하고 살아갑니다.

우리들의 삶은 언제나 하나도 온전한 것이 없습니다. 자신의 뜻대로 백 년이고 천 년이고 살고 싶고 남보다 더욱더 부자로 살고 싶은 게 욕망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두려움을 이기고 소멸하고자 각자 나름대로 종교를 선택합니다.

하지만 바른 믿음의 뿌리가 단단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더욱더 힘들고 어려울 때 의지의 약함에 인해 타종교를 선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뿌리가 흔들리면 여기가 갈 곳인가? 저기가 더 좋은가?

헤매다가 결국에는 무심히 흐르는 세월 속에 자신만이 외롭고 힘들고 그렇게 살아갑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피나는 노력도 없이 헤매이다가 또 다른 곳에 간다고 하여도 역시나 마찬가지의 결과만 남을 뿐!

믿음을 가지면 죽을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믿음을 위하여…. 나 자신만이 나를 이길 수가 있습니다. 내가 나를 믿지 못하면 누구를 믿겠습니까?

항상 스님들의 법문구절에 내가 주인공인 것입니다.

믿음의 대상을 신격화하거나 절대화하는 것은 금물입니다.

참된 믿음의 근원은 바른 스승을 만나야 됩니다.

사찰의 겉모습만 보거나 스님의 학력이나 배경을 보거나,

부자 절인지 가난한 절인 줄을 시시비비를 가려서도 안 됩니다.

언제나 법당에서는 염불소리가 나야 합니다. 출가자이든 재가자이든 부처님의 도량에선 열심히 염불소리가 나야 합니다.

참된 믿음은 모든 자신의 마음을 내놓아야 합니다.

제일 먼저 육바라밀을 하여야 합니다.

세상이 살기가 더욱더 힘들고 어려울수록 더욱더 믿음을 가져서 매달려야 합니다.

기도는 쉬면 안 됩니다. 염불을 쉬지 말고 하십시오.

오직 당당한 용기와 필사적인 믿음의 진실만이 고통과 번뇌를 소합니다.

두려워하지도 말고 의심도 내지 말고 어려울 때일수록 더 기도하고 사찰을 찾아오십시오.

부처님께서는 필히 모든 것을 다 들어주신다 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 약속을 지킬 수 있도록 우리도 열심히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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